대외활동/아트나이너 8기

[11월 시네클럽] <수면의 과학> (La Science des reves, The Science Of Sleep, 2006) _아트나이너 윤정민

_JMY_ 2020. 2. 3. 16:56

 

 

※본 리뷰는 스포일러와 talk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귀엽고 혼란스럽다. 솜사탕 같던 포스터, 아기자기하고 아날로그인소품들이 가득한 배경과는 다르게 드림 로맨스는 우리가 기대하던 ‘스위트 드림’과는 조금 다르다. '호접지몽’처럼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모를 순간순간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움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수면의 과학>은 꿈의 무질서를 똑 닮아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스테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언제나 꿈속에 사는 인물이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어머니가 있는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도, 거의 사기를 당해 입사하게 된 날에도 어김없이 꿈을 꾸고는 한다. 어느 날, 그런 스테판의 옆집에 ‘스테파니’(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이사 온다. 이삿짐 운반 중에 생긴 스테판 손목의 멍을 계기로 둘은 금방 친해지게 되고, 스테판은 자신에게 공감하고 관심을 주는 스테파니에게 점점 마음이 쏠린다.

 

 

 

  <수면의 과학>은 <이터널 선샤인>으로 유명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또 다른 수작이지만,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지우고 다시 떠올렸던 사랑과는 전혀 다른 결의 로맨스다. 그도 그럴 것이, <수면의 과학>에는 <이터널 선샤인>에서 기억과 사랑을 촘촘히 엮어냈던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이 없다. 오프닝부터 마지막 엔딩까지 그저 미셸 공드리의 독특한 상상력과 지휘만이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수면의 과학>은 동화에 나올 법한 환상적인 꿈의 세계가 돋보인다.

  이 세계는 꿈이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걸 증명하듯, 온갖 스테판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 단칼에 거절당했던 자신의 그림을 벽에 걸고, 자신을 탐탁지 않게 보는 회사의 사장 자리에 앉아 직원들의 찬양을 받고, 스테파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문 밑으로 집어넣는다. 성인 남성을 쥘 만큼의 커다란 손이 등장하여 스테판이 느끼는 압박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수공예 물품들은 모두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여기에 질서정연한 서사가 들어갈 틈은 없다. 흥미로운 부분은 가끔은 꿈과 현실이 뒤섞인다는 것이다.

  미셸 공드리 감독은 의도적으로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동물 옷을 입고 스테파니에게 러브 송을 부르고, 내 애인을 소개한다며 색색의 방에 들어가는 순간 스테판은 현실로 돌아온다. 꿈에서 스테파니에게 보냈던 편지는 현실의 스테파니에게도 전해져 관객들까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마치 의식과 무의식을 잔뜩 뒤섞어 놓은 채 어떤 것이 진짜인지 구분하는 숨은그림찾기 같기도 하다. 이는 영화 <휴먼 네이처>에서 미셸 공드리가 던졌던 질문과 이어진다. 인간을 이루는 게 무엇일까.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정돈되지 않는 것은 인간이 아닐까.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단지 감독은 문 앞에서 현실과 꿈을 헷갈리고 있는 스테판과 의아해하는 스테파니의 모습을 통해 관객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할 뿐이다.

 

 

 

  마지막까지 스테판의 사랑은 꿈과 너무 닮아있다. 예상을 할 수 없고 확신조차 들지 않는 들쑥날쑥한 것까지 착실하게 닮아버려, 오히려 이 로맨스가 왜 ‘드림’ 로맨스인지 예측해볼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스테판은 자신의 마음을 스테파니에게 계속 닿으려고 노력하고 고백에 이르기까지 한다. 인간에 대한 본성의 답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듯이, 감독은 여기에 대한 스테파니의 답을 확실하게 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저 잠을 자듯 스테판의 꿈을 따라 가보면 어느 정도 답을 유추할 수는 있을 정도다. 미셸 공드리가 서사보다 꿈의 재현을 신경 쓴 만큼 스크린에 펼쳐진 이미지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이참에 <수면의 과학>을 통해 평소에는 할 수 없었던 꿈의 공유를 잠시나마 함께 해보는 건 어떨까. 어지럽고 어설프지만, 그 사람이 꿈에 들어올 정도로 열렬한 사랑을 충분히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