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한국이 답답할 때가 있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할 때, 잘못된 걸 잘못되었다 했을 뿐인데 조직 내 분위기를 흐렸다는 욕을 먹을 때, 왜 너는 꾸미고 다니지 않느냐며 물어올 때는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럼 이제 ‘왜 여기는 나를 존중해 주지 않을까.’, ‘왜 아무렇지 않게 외모 지적을 하고 나이를 물어보며 서열을 정하나.’, ‘이렇게나 좁은 곳에서 왜 누군가를 밟으며 아등바등 살아야 할까.’ 같은 생각만이 가득 차오른다. 왜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냐는 자기혐오가 따라오는 건 당연하다. 이런 크고 작은 이유는 흐르고 흘러 ‘한국이 싫어서.’라는 결론에 닿기도 한다.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라는 사회와 맞지 않아서 이민을 결심했던 작가는 소심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박가영’이 아니라 호주 멜버른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거쳐 레스토랑 CEO ‘앨리스’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9년 전의 나처럼 이민이란 선택지를 생각하고 있는 너는,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덜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이 글을 썼어.<이민을 꿈꾸는 너에게> p.5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 속 앨리스는 편지를 띄우며 시작한다. 왜 이민을 선택했는지, 화려하게만 보였던 이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같은 앨리스의 자기개방은 한국과 호주만큼 멀었던 마음의 거리를 확 좁혀준다. 더욱이나 이민이라는 선택지를 생각하고 있는, 네 세상에 만족스럽지 않은 너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 하나하나는 많은 고민을 했을 예비 이민자들이나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따스함을 가져다준다. 이렇게나 ‘네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종이 너머로 절절히 묻어나오는 이유는 금방 찾을 수 있다. 다음 장에서 계속 이어질 앨리스의 이야기가 차갑고 황량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호주에서 행복하다는 앨리스는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했음을 말한다. 호주에서도 한국에서도 자신은 꾸준히 ‘알바몬’으로 일했지만, 한국에서는 일하는 보람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고. 심지어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었던 일들은 타인이 봐도 경악스럽기 그지없다. 학부모가 밤늦게 전화해서 네가 감히 우리 딸한테 그러느냐며 화를 냈던 것, 사무보조 회식 때 차장이 도우미인 줄 알고 껴안았던 것 등등 (심지어 이 차장은 알바가 너무 치마를 짧게 입은 탓이라며 끝까지 변명했다고 한다). 이에 비해 호주에서는 힘든 만큼 떨어지는 게 있었다. 요리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눈앞이 노래지도록 부엌에서 일하고 힘들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고 자기 역할이 확실했기 때문에 오히려 재미있게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서핑이라는 취미를 갖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내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서핑을 즐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포기해야할까. (중략) ‘삶의 질’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삶의 질이라는 게 더 비싼 걸 먹고, 더 좋은 차를 타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는 편안함과 풍요로움이란 걸, 그때 처음 알았어.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 p. 210-211
호주가 작가에게 특별해진 건 비단 그것뿐만은 아니다. 퇴근 후 트렁크에서 서핑보드를 꺼내 파도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가득한 바닷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호주 사람들은 작가가 호주 이민을 결심하게 된 계기이다. 한국에서 취미를 가진다는 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지는 아마 대부분이 공감하지 않을까싶다. 시간을 쪼개서 개인 시간을 만든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그게 당연하다. 칼같이 퇴근해서 차를 몰고 근처 바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노는 게 일상인 거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상이 당연시되는 나라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작가가 마냥 호주 찬양만을 하는 건 아니다. 작가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마따나 그가 직접 겪은 힘든 현실이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불편함을 예시로 들며, 이민으로 새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 필수로 인지해야 할 문제들을 일깨운다. 비싼 의료서비스, 불편한 행정, 한국과는 현저히 다른 일 구하기까지 가지각색이다. 이외에도 워킹 홀리데이 사례 중 어떤 실패사례가 있는지, 이민권 취득 과정 중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민 왔는데 나라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 역이민 사례라든지 단순히 ‘호주가 좋다.’가 아니라 ‘나는 이런 게 좋았고 운도 어느 정도 맞았지만, 너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를 강조한다. 당근과 채찍이 나누어져 있는 게 아니라, 채찍에 당근을 달아놓은 느낌이다.
굳이 이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일 필요는 없어. 너를 발견하고 싶다면 널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의도적으로 바꿔보거나 다른 작은 도전들을 해야 해. 사소한 일이라도 계속 도전하고 변화해보자. 그 도전 때문에 네가 세게 넘어지고 힘이 다 빠졌다고 해도 게임이 끝난 건 아니야.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 p. 295
그래도 이 따스한 작가는 마지막까지 꾸준히 상냥하다.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 이외에도 그저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도 말을 건넨다. 어떤 거라도 해보자고, 무언가를 바꾸려는 네 모든 시도를 응원한다고, 어찌 보면 그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할 말을 해주는 거다. <이민을 꿈꾸는 너에게>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이런 상대방에게 필요한 말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마지막 인사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민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혹은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이런저런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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